서울 한복판, 빌딩 숲 사이로 고요하게 서 있는 문이 하나 있다.
광화문.
이 문을 지나는 순간, 2026년의 서울은 사라지고 1395년의 한양이 시작된다. 경복궁은 그런 곳이다. 시간이 멈추는 곳. 아니, 시간이 겹쳐지는 곳.
조선의 심장, 근정전
"큰 복을 누리라."
경복궁이라는 이름에는 새 왕조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가장 먼저 지은 궁궐. 그 중심에 근정전이 있다.
왕의 즉위식이 열리고, 외국 사신이 머리를 숙이던 곳. 근정전 앞 넓은 마당에 줄지어 선 품계석을 보면, 수백 명의 신하가 도열했을 그 장면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물 위에 떠 있는 꿈, 경회루
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경회루를 말하겠다.
48개의 거대한 돌기둥이 떠받치는 2층 누각. 그 아래로 잔잔한 연못이 펼쳐지고, 물 위에 비친 경회루는 마치 또 하나의 세계 같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신하들과 연회를 열고,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공간이었다.
아침 일찍 가면 관광객이 적어서, 물에 비친 경회루를 혼자 독차지할 수 있다. 그 고요한 순간이, 경복궁에서의 나의 최고의 기억이다.
왕의 쉼터, 향원정
경회루의 웅장함과는 다른, 소박하고 고즈넉한 아름다움. 향원정은 연꽃 향기가 멀리까지 퍼지는 정자라는 뜻이다. 작은 연못 한가운데 놓인 육각형 정자, 그리고 그곳으로 이어지는 다리.
봄이면 벚꽃, 여름이면 연꽃, 가을이면 단풍, 겨울이면 설경. 사계절 어느 때 와도 향원정은 다른 얼굴로 우리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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